얼마 전 학교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가방’이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다. 학교 주변에서 비슷한 가방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눈에 자주 띄더라니, 빈폴 가방이 유행인 모양이다. 겨우 가방 하나 가지고 화두로 삼을 게 있나 싶겠지만, 문제는 가방 자체가 아니었다. 우리를 놀라게 한 건, 그 가방이 무려 27만원이나 나간다는 사실이었다. 그 정도면 일반적인 대학생의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액수다. 돈 쓰는 거야 자기 마음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대학생이 책 넣고 다니는 가방에 굳이 27만원씩이나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 만약 그 가방이 유행이 아니라면, 그러니까 아무도 그 가방이 27만원씩이나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 가방은 몇 개나 팔렸을까.
사실 이런 일이 하루이틀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은 허영심이라는 병폐에 푹 찌들었다. 저축률은 글로벌 소비문화의 상징인 미국보다도 낮은데, 쓰는 건 별반 다르지 않다. 고등학생들은 노스페이스 패딩의 가격으로 계급을 매긴다. 등록금은 비싸서 못 내겠다는 대학생들도 커피는 무조건 챙겨 마셔야 하고, 여학생들은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싶어한다. 어른들이라고 썩 나을 건 없다. 경차는 ‘쪽 팔려서’ 안 되고, 신혼집은 서울에 있는 아파트로 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그것도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로 골머리를 잔뜩 앓고 있는 나라에서 말이다.
허영심의 문화는 나라를 병들게 한다. 검소함이 미덕으로 칭찬받는 문화가 형성돼야 나라가 건강해진다. 자린고비가 되라는 게 아니다. 각자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건강한 인식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가? 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도 정책도 아닌 ‘종교’다. 종교는 사회가 도덕과 윤리를 잃어버리거나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바꿔 말하면, 한국 사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한국교회의 직무유기다.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20%나 되는 나라다. 만약 한국교회가 그 1천만명의 성도들에게 “보화를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가르쳤다면, 지금과 같은 허영심의 문화가 뿌리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검소함을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허영심을 부추기고 있다. 경쟁적으로 큰 교회를 세우고, 그 경주에서 당당히 1등을 쟁취한 목사의 입에서는 “작은 교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또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거나 부자가 된다는 메시지가 강단에서 선포되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하다. 내가 아는 예수는 세리와 어부를 데리고 다니며 부자 청년에게 “네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분인데, 저 예수는 아마도 동명이인인 모양이다.
작금의 현실은 정치나 정책이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어떤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 속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뒤틀린 이 땅을 회복시키는 것은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권력이 아니라 밑바닥, 즉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부터 일어나는 변화라는 진리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 밑바닥은 주님께서 맡기신 교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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